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촐라 제국 (문단 편집) == 문화 == 촐라 제국 시대에 타밀 문화는 황금기를 맞게 되었다. 대부분의 문헌은 운문으로 쓰였으며, 수많은 문인과 학자들이 [[타밀어]] 또는 [[산스크리트어]]로 저술하며 왕의 보호 아래 자신들의 학문 연구에 몰두했다. 촐라 시대의 유명한 저술가로는 타밀 5대 서사시 중 후기의 작품인 《시와하 친다마니》(Cīvaka Cintāmaṇi, சீவக சிந்தாமணி, 10세기 전반)를 쓴 티루타카데와르(Tiruttakkatēvar, திருத்தக்க தேவர்), 《칼링가투파라니》(Kaliṅkattupparaṇi, கலிங்கத்துப்பரணி)를 쓴 체양곤다르(Ceyaṅkoṇṭār, செயங்கொண்டார்), 《[[라마야나]]》를 번안한 《캄바라마야남》(Kamparāmāyaṇam, கம்பராமாயணம்)을 쓴 캄바르(கம்பர்) 등이 있다. 타밀 언어학 전통에서 중요한 문법서 《위라솔리얌》(Vīracōḻiyam, வீரசோழியம்)도 촐라 제국 시대의 것으로 푸타미티라르(Puttamittirar, புத்தமித்திரர்)가 저술했으며, 이 밖에 오늘날 실전되었지만 중요 작품으로 꼽히는 《쿤달라헤시》(Kuṇṭalakēci, குண்டலகேசி) 등도 촐라 제국 시대의 작품이었다. 파란타카(Parāntaka, பராந்தக) 1세 때 웽카타마다와(Venkatamadhava)는 《[[리그베다]]》에 대한 가장 중요한 주석서 중 하나인 《리가르타디피카》(Rgarthadipikā)를 [[산스크리트어]]로 저술했다. 또한 촐라 제국은 수많은 도시, 호수, [[댐]], [[저수지]] 등을 건설했으며, 촐라 시대의 도시 가운데 라젠드라 1세가 새로 건설한 왕도 [[강가이콘다촐라푸람]]이 유명하다. 또한 언덕과 바위를 깎아 [[크고 아름다운]] 사원을 만드는 건축술이 발달했다. 촐라 제국의 건축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물로는 위자얄라야촐리스와람(விஜயாலய சோழீஸ்வரம்), 코랑가나다르(கோரங்கநாதர்) 사원, 코둠발루르의 세 사원(மூவர் கோயில், கொடும்பாளூர்) 등을 들 수가 있다. 촐라 제국의 이 같은 건축술은 [[팔라바 왕조]]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지만, 이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타밀 건축술이 절정을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